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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아빠 보고서

"시멘트로 복원된 다리가 보물인가?"

“저거는 보물도 아니고 암것도 아니여”


삿갓’에 ‘양복’ 입힌 고막천 ‘똑다리’보수공사


유홍준이 그랬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잠언 같은 이 말의 의미를 일러준 다리가 하나 있다. 고막천 석교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똑

다리’라고 부른다. 말의 어감이 정겹다.


5년쯤 전이다. 목포를 다니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다. 국도 가까운 곳에 다리가 하나 있었고,

오래된 시간이 느껴졌다. 그땐 잘 몰랐다. 그저 괜찮은 다리가 여기 있었구나 생각했다. 1년 뒤

그 다리가 보물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늦은 지정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번쯤 더 고막천 석교를 찾아간 적이 있다. 갈 때마다 달랐다. 다리의 내면 같은 어떤

의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 돌을 정교하게 깎았다. 나

무로 마루를 짜듯 다리를 짰다. 고막천 석교에‘다리를 놓았다’는 문장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못 하나 쓰지 않고 짜 맞춰 지은 한옥처럼 공들여 만든 다리다.



얼마 전 그 다리를 다시 만났다. 갑자기 변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똑다리는 그대로였다. 그런

데 똑다리와 몸을 잇대고 있던 낡은 시멘트 다리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리의 재질인 대

리석이 번쩍였다. 갑자기 삶이 허전해졌다.



700년 세월과 완벽한 부조화

고막천 석교는 고려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축조연대가 밝혀진 돌다리 중 가

장 오래된 다리다. 길이 20.1m, 너비 1.8m, 높이 2.1m의 규모이다. 그 다리를 누르고 앉아있는

시간이 700년이다. 아직도 단단하다. 그리고 정신이 아득하게 미학적이다. 700년 전 다리의 돌

을 다듬은 석공에게 감사한다. 돌을 다룬 그 섬세한 손길 앞에서 언어는 무력하다. 다리의 아름

다운 생김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밖이다.



똑다리는 농로의 기능을 했다. 물론 한때는 국도 1호선이 그 다리 위를 통과하기도 했다. 지금

은 아니다.

섬세한 돌다리 옆으로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시멘트 다리가 몸을 잇대고 있었다. 그런 대로 돌

다리와 적절하게 어울렸다. 오랜 세월 동안 똑다리와 몸을 잇대 전혀 성분이 다르되 한몸인 것

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세월은 함께 어우러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오래된 시멘트 다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다리

가 똑다리와 몸을 잇댔다. 고막마을 주민들은 당황해 한다. 튼튼한 다리가 생겼으니 실상 생활

에는 좋은 일이다. 농사짓기가 조금 편해졌다. 그러나 난감하다. 그 완벽한 부조화 앞에서 할 말

을 잃었다.


“옛날에는 우리 마을 다린께 말할 거 있으문 했제. 근디 인자 보물이 되야분께 문화재청 소속 아

니드라고. 첨에 공사를 한닥한께 똑다리하고 비슷한 모냥으로 돌을 깎아서 다리를 이슬랑갑다

생각했제. 근디 만들어놓고 본께 그것이 아니여. 저거는 보물도 아니고 암것도 아니여. 걍, 다리

여.” 마을주민 박행부(70)씨의 말이다.



튼튼하면서도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고막천은 홍수가 잦다. 여름이면 쉽게 물이 범람하고, 똑다리는 매년 한 번씩은 강물 속에 잠긴

다. 그러나 똑다리는 700년이 지나도록 그 물살을 몸으로 버텨냈다. 망가진 적도 없고, 물살에

떠내려간 적도 없다. 문제는 시멘트 다리였다. 한 번씩 물에 잠겼다 나오면 어딘가 어긋났다.



2005년 11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2006년 12월 다리가 완성됐다. 5억6000만원(국비 70%·지방비

30%)이 들었다. 대리석이 번쩍이는 다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재료의 질감이나 크기, 형

태 등 어느 것도 똑다리와 어울리는 부분이 없다.


함평군청과 문화재청은 부조화의 지적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멘트 다리가 너

무 낡았다. 그리고 물 흐름이 똑다리 쪽으로만 집중됐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물길을 옆으로

돌려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튼튼한 다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튼튼하면서도 미학을 가미시킨 그런 다리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주민들

의 생각처럼 똑다리와 비슷한 형태로 다리를 만들어 잇는 건 어땠을까. 함평군청의 관계자는

“똑다리와 같은 형태의 다리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새로 만든 다리

가 너무 부각돼 보물로 지정된 똑다리가 돋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화재청의 생각이었다. 외양보

다는 기능에 충실한 다리다”고 말했다.



새로 만들어진 다리를 먼발치에서 살펴본다. 뭐랄까, 위에는 삿갓을 쓰고 아래는 양복을 차려입

은 거 같다. 사람만 목숨이 있는 게 아니다. 그 부조화가 똑다리의 미학적 이미지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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