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인물상
 귀국 후 제작한 여인상은 무릎을 모으고 있는 모습,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있는 모습,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등을 세우고 앉은 모습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제한된 크기 내에서 그가 가능한 많은 동세를 표현하려고 한 점을 알 수 있다. 동세가 표현된 좌상, 입상과는 달리 그의 인물두상과 흉상은 정적이다. 이러한 흉상들은 머리와 목 아랫부분이 과감하게 생략되고 전체적으로 길고 마른 형태감을 지녔다. 그의 인물상은 움푹 들어간 눈, 높은 콧대, 둥근 머리, 좁은 얼굴형으로 인해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라 이상적인 얼굴형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을 통하여 그가 추구했던 지향점은 가장 순수한 영혼의 모습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영원성이었다. 흔들림없이 뜨고 있는 눈은 본질을 꿰뚫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생생한 눈빛을 통해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어떤 것을 갈구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같은 형태이나 표면에 색을 다르게 칠하던가 재료 자체도 다르게 사용한 작품들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변주는 작가가 재료, 질감 등의 물성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결과를 이끌어내는 그의 예술관을 반영하고 있다. 
III. 자소상
 권진규는 드로잉과 조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많이 다루었는데 그는 모델과 작가와의 관계를 ‘모델 +작가=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모델의 내적 세계를 투영하여 작품에 담고자 하였으므로 자신이 모델을 잘 아는 만큼 작품을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1969~70년경에 제작된 비구상의 모습에 자신의 얼굴을 중첩시켜 표현했다는 점은 그가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구도적인 차원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는 흉상 이외에도 마스크도 제작하였다. 데드마스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두상은 삶과 내세의 중간 지점에서 인간의 영혼을 끌어내는 마력을 드러낸다. 자화상을 많이 드로잉했다는 점, 그리고 1965년 첫 개인전 포스터에 자소상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력서에 대표작품으로서 자소상을 꼽고 있을 만큼 예술가로서의 소신을 자소상으로서 펼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