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엄 부게로의 그림 [큐피드에 저항하는 젊은 여인]은 사실적인 형태와 고유색을 사용하여 마치 눈앞에서 생생히 일어나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신화 속 세계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화살을 들고 달려드는 귀여운 큐피드 속에 감추어진 욕망, 그것과 대비되는 여인의 표정과 부드러운 거부의 몸짓은 제목과는 달리 이들이 이미 사랑에 빠져 유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화면 속의 큐피드는 단지 사랑을 전달하는 신화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성인 남자를 대신하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화가들은 남녀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세속적인 욕망을 감추고 자연스레 누드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 전설이나 신화의 내용을 차용하곤 했습니다. 만일 작가가 큐피드 대신 성인 남자의 누드를 그렸다면 어떻게 변했을까요? 아마도 당시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 신화적 상황을 연출함에 있어 부게로는 화실에서 모델을 보며 인물들을 그렸고 배경은 근교의 풍경을 참고했다고 전해집니다. 독일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페르디난드 헤일부스의 [독서하는 사람] 또한 사실적인 형태와 고유색을 사용하여 마치 오늘날 컬러 사진과 같은 정밀한 묘사를 보여줍니다. 긴 머리에 붉은 모자를 쓰고 독서에 몰입한 귀족적 풍모의 젊은 남자는 지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왼쪽 뒤편에 세워진 검은 그가 문무를 겸비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부게로의 그림과 나란히 배열해 놓고 보니 마치 한 남자가 책 속의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것 같은 화면 연출 효과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각적인 정보를 연결시켜 조직화 하려는 욕구와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장면 전환은 이러한 능력에 기초한 것입니다.
주관적인 색상 표현이 두드러진 표현주의 그림 미술의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온 사실적인 표현의 회화들과는 달리 19세기 후반 사진이 널리 보급된 이후부터 많은 진보적인 화가들은 새로운 창작의 개념으로 무장하고 급속히 그 표현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사물 고유의 형태를 변형하거나 자유롭게 색상을 선택하며 재현의 엄격한 질서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난 새로운 표현형식의 작품들이 풍성하게 등장하는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고유색을 벗어나 작가의 주관적인 색상 표현이 두드러진 그림들은 19세기 말 표현주의 화가들(마티스, 뭉크, 놀데, 키르히너 등)의 작품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전적 색채 조화를 무시하고 격렬하고 자유분방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야수파로 칭해지는 일군의 화가들은 대상의 전형적인 아름다움보다 불안, 고뇌 등 극도의 감정적 소용돌이와 내면의 본질적 실체를 충동적이며 상징적 이미지로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