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서태후는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20세기도 아니고 19세기에, 거기다 남성중심의 유교국가 중국에서 여성이 47년 간 통치자였다는 사실은 서태후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매우 탁월한 인물이었음을 말해준다. 서태후가 집권할 당시 청나라는 대내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외적으로는 서구열강이 호시탐탐 중국 땅을 노렸고 내적으로는 250여 년 간 만주족의 지배를 받던 한족들이 여기저기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쩌면 중국역사상 가장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시기였을지도 모를 19세기 말, 최고 권력을 가졌던 서태후의 행보가 이후 중국의 운명을 일부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태후는 1835년 안휘성의 몰락한 관리의 딸로 태어났다. 만주족이었고 성은 예흐나라, 어렸을 때 이름은 행정 혹은 행아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서태후의 어린 시절은 매우 빈곤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애인 영록을 버리면서 까지 궁녀가 되고 싶어 했다. 1851년 16세에 궁녀가 되어 자금성에 들어간 서태후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욕심 많고 진취적이었던 서태후는 궁녀 이상의 그 무엇을 원했다. 젊음과 미모가 있었고 거기에 더해 묘하게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말솜씨가 있었던 서태후는 함풍제 주변 환관들의 환심을 샀고 곧이어 황제의 눈에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황제의 유일한 혈육을 낳았다. 아들이었다. 이것은 하늘이 그녀에게 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