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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술의 주체적 여백을 허락해 주소서..


리얼리즘(Realism)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매우 해석이 복잡다단한 용어이다. 우선 철학에서 리얼리즘이란 보편적 개념(universal concepts)의 독립적 존재성을 나타내는 말이며,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되는 관념론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중세보편논쟁에서 개체적 실재성을 주장한 유명론자들(Nominalists)과 반대 입장에 선 매우 보수적인 사상이었다. 근세에 오면 리얼리즘은 사물이 시공 속에서 우리의 감관에 주어지는 그대로 실재한다는 매우 나이브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회의론에 빠지게 된다. 리얼리즘에서 언제나 문제 되는 것은 무엇이 리얼리티(Reality)냐, 즉 무엇이 실제로 있는 것이냐 하는 질문이다.

예술에 있어서 리얼리즘을 사실주의(寫實主義)라고 말하는데, 이때도 사(寫)는 '그린다' '옮긴다'는 뜻이며 그 옮김의 대상인 실(實)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영원한 과제 상황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데 19세기 중엽부터 공화정을 향한 혁명의 물결에 가담한 프랑스 문인과 화가들이 제창하는 사실주의는 어두운 사회의 현실, 핍박받고 소외된 노동자 계급, 이전에 도저히 예술의 대상이라고 여길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삶의 실제 상황(리얼리티)을 그린다는 운동으로 나타났다. 발자크(Balzac).플로베르(Flaubert).졸라(Zola)의 소설은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불릴 정도로 성과 폭력에 대한 현미경적 분석을 가했다. 그리고 화가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77)는 최초로 공공연하게 '사실주의'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사회의 변혁을 유도하지 않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그림 중에 '세계의 기원'(1866, 올세이 미술관)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여자의 풍만한 성기를 매우 디테일하게 그려놓은 것이다. 여자의 성기야말로 섹스의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생산의 근원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밀레(J. F. Millet, 1814~75)의 '만종'도 농촌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3일 오후 3시쯤, 우리 특별수행원팀은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하여 공훈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현장을 참관했다. 그리고 창작사전시관에서 전시된 그림을 보았고, 또 많은 사람이 북한 화가들의 그림을 샀다. 아마도 금강산 여행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북한 화가들의 그림에 익숙해 있을 것이다. 많은 동행인이 나에게 어떤 그림이 좋으냐고 물었다. 즉 예술적으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글쎄, 나는 어떠한 대답을 해야만 했을까? 같이 간 문정인 교수는 북한 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건재하고 있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창작사의 총책임자에게 여쭈어 보았다.

-그림의 양식이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습니다만….

"우리는 사실주의에만 충실합니다. 추상은 하지 않습니다."

이때 로동신문의 기자라는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선생은 아주 비판적인 안목이 강한 분 같습네다. 우리 공화국 그림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의 바탕이 없는 추상도 엉터리지만, 추상의 인식이 없는 사실도 엉터리지요. 완벽한 사실주의를 추구한다면 그림보다는 사진이 훨씬 더 위대한 예술입니다.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이 달라지듯이 기계도 해석을 합니다. 하물며 작가의 풍요로운 해석이 결여된 화풍은 사실이 아니라 좀 자세한 사생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북한 그림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원칙을 버렸습니다. 어두운 사회의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금강산이나 어여쁜 소녀, 화려한 산수를 사생하는 데 세필(細筆)을 소진하고 있습니다. 세필이 있으면 갈필(渴筆)도 있어야 하고, 구상이 있으면 추상이 있어야 하고,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북한 그림은 사실주의 그림이 아니라 합목적적 장식화에 불과합니다."

-예술이 어두운 현실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밝은 현실도 드러내야 하지 않겠습네까?

"나는 지금 당신과 사상논쟁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양식적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을 때만이 북한의 그림들이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국익에 도움 되는 외화벌이가 된다는 것을 일러주려는 것뿐입니다. 중국 현대미술의 발전상을 참고하십시오. 내 눈에 비친 북한 그림은 솔직히 말씀드려 옛날 '이발소 그림'의 정교한 형태입니다."

과연 이러한 나의 이야기가 로동신문에 실릴 수 있을까? 나를 줄곧 안내한 여성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비판은 혹독해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단지 여태까지의 남측 비판이 애정이 결여된 비난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께 비옵나이다. 화가들에게 다양한 화풍과 다양한 주제를 추구할 수 있는 주체적 여백을 허락하시옵소서. 북한 화가들의 기초실력은 뛰어납니다. 이제 새로운 전환으로 도약해야 할 때이옵나이다.

도올 김용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