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 : 1911~1993)
영국의 소설가 윌리엄 골딩이 1954년에 쓴 소설로, 1983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TV의 주말의 명화로 두 번쯤 접한 적이 있었는데 원작 소설로는 처음으로 읽게 됐다.
전쟁을 피해 6살부터 12살까지의 소년 수십 명을 태우고 날아가던비행기가 고장으로 무인도에 불시착하여 어른들은 아무도 없고 소년들만 살아남은 가운데 금발의 랠프가 지도자로 선출되고 뚱뚱하고 몸이 둔하지만 머리가 좋고 판단력이 뛰어난 소년은 새끼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집단적인 조롱과 따돌림을 당하지만 지도자 랠프에게 삼국지의 모사들처럼 현명한 조언을 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한 무리의 성가대원을 이끌고 있는 성가대장이자 랠프 또래인 잭은 즉흥적으로 랠프가 지도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중의를 거스를 수가 없어서 참고 있게 된다.
랠프는 자신이 큰 소라를 불면 아이들이 모두 모이게 하고 이 소라를 손에 쥐고 있는 아이가 발언권을 갖게 하는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섬에 있는 산의 정상에 새끼돼지의 안경을 이용해서 햇빛을 집중시켜 불을 피워서 섬 주위를 항해하는 배가 이 섬의 연기를 보고 자신들을 구조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교대로 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하는 연대책임을 지운다.
어른들은 아무도 없고 훌쩍거리며 잘 울거나 무서움을 잘 타는 어린 꼬마들과 커 봤댔자 열두 살에 불과한 소년들이 모여서 자치로 단체생활을 하게 되는데 다행히 무인도에는 과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해산물도 약간 잡을 수 있으며 물도 풍부하며 밤이 되어도 그리 춥지 않은 좋은 기후라서 아이들은 구조될 때를 기다리며 자연 속에서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며 천진난만하게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육식이 먹고 싶어진 잭과 성가대원 몇 명은 멧돼지 한 마리를 잡게 되고 섬 안에 있는 모든 아이가 오랜만에 육식을 먹게 되는 행운을 누리지만 멧돼지 사냥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들은 산꼭대기의 봉화를 꺼뜨리게 되고 그때 우연히 섬 근처에 배가 지나가다가 불이 꺼져서 연기를 피워 올리지 못하는 바람에 무인도에 있는 그들의 존재를 모른 채 그냥 지나쳐 가서 구조의 손길을 놓치게 된다.
랠프는 그들을 힐책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잭은 랠프 대신 회의를 소집해서 랠프보다 자신이 더 대장에 적합하다고 강변하지만, 랠프가 지도자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무리는 랠프가 보는 앞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다른 대장을 선출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게 되어 호응을 해 주지 않고 모욕감을 느낀 잭은 홀로 무리를 떠나버린다.
잭은 무리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거처를 만들게 되고 아이들은 서서히 랠프와 새끼돼지의 곁을 떠나서 잭에게 합류하게 된다.
잭의 패거리는 다시 멧돼지를 사냥해서 멧돼지 고기를 먹게 되고 사냥을 끝낸 후에 산에서 홀로 늦게 내려오던 사이먼은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져서 부상을 당한 채로 죽어 있는 조종사의 부패한 시신을 보게 된다.
한편, 멧돼지 고기를 먹기 위해 다시 한데 모인 아이들은 함께 멧돼지 고기를 먹다가 폭우가 쏟아지며 주위가 어두워지자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 원무를 추면서 광란의 노래를 부른다.
이때 조종사의 부패한 시신을 보고 놀라서 뛰어 내려온 사이먼이 폭우가 휘몰아치는 어둠 속에 숲 속에서 뛰쳐나와서 이 사실을 무리에게 알리려고 원무를 추는 무리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가 반쯤 미쳐 있는 소년들에게 몰매를 맞아서 죽고 만다.
그리고 조종사의 시신도 빗물에 씻겨 내려와서 무리에게 그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는 바닷속에 수장되고 만다.
결국, 랠프에게는 새끼돼지와 쌍둥이 형제인 샘과 에릭, 꼬마들만 남게 되고 그 외에는 모두 권위주의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주의자인 잭의 휘하에 들어간다.
잭의 무리는 멧돼지 고기를 구울 불을 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새끼돼지의 안경을 탈취하기 위해 어느 날 밤, 랠프의 움막에 침입하여 랠프의 무리와 격투를 벌이고는 안경을 빼앗아서 사라진다.
그 다음 날 랠프는 새끼돼지와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잭의 무리에게 가서 어젯밤 일을 항의하고 새끼돼지의 안경을 돌려줄 것을요구하지만 쌍둥이 형제는 잭의 무리에게 사로잡히고 새끼돼지는 로저가 굴린 바위에 맞아 해변의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
다시 움막으로 내려간 랠프는 자신의 짐승 같은 몰골을 보고 꼬마들이 무서워서 달아나는 것을 바라보다가 텅 빈 움막에 홀로 있기도 처량해서 잭의 무리가 있는 곳에 몰래 찾아가서 우연히 샘과 에릭을 만나지만, 그들은 이미 잭의 무리에 항복한 뒤였다. 그리고 랠프는 그들에게서 내일 그들이 랠프를 멧돼지처럼 사냥하기로 계획했다는 정보를 듣는다.
랠프는 자신이 가까운 덤불 밑에 숨어 있을 테니 그들에게 비밀을 지키고 그쪽으로 그들이 찾아가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랠프는 갈증과 굶주림을 견디며 덤불 속에 숨어 지내지만, 샘과 에릭을 때려서 랠프의 은신처에 대한 자백을 받아낸 무리는 바위를 굴려서 지형적으로 랠프가 자신을 지키기에유리한 덤불을 훼손시킨다. 그리고는 덤불 속으로 창을 찔러대지만, 무리 중의 한 아이가 오히려 랠프의 창을 맞자 겁이 난 나머지 아예 덤불에 불을 붙여 그를 태워 죽이려고 하는데 산불은 크게 확산되고 랠프는 덤불 속에서 뛰쳐나와 황급히 달아나지만, 이성을 잃은 어린 야만인들의 추격을 받게 된다.
랠프는 잭의 무리에게 사냥을 당하는 멧돼지처럼 쫓기다가 큰 산불로 번진 무인도의 모습을 보고 이 섬에 상륙한 순양함의 해군들에게 발견되어 생명을 구하게 되고 잭의 무리와 함께 구조된다.
여기서 이 소설의 제목인 '파리대왕'은 악마를 상징하는 단어로서 인간의 마음속 깊이 내재한 악의 본성을 밀도 짙게 묘파한 이 작품의 제목으로 아주 잘 어울린다.
법적인 책임이 면제되는 어린 미성년자들이 어른들의 통제가 없이 장기간 무리를 지어 폐쇄적인 자치생활을 할 때에 어른들의 세계에 못지않은 야만과 폭력, 공포의 질서가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랠프, 새끼돼지와 대척점을 이루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독단적으로 공포의 질서를 만들어서 자신을 따르게 하려는 잭의 본능에 지배되는 현실주의가 상호 충돌하여 마침내 상대를 죽이거나 내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 극한상황으로 치달리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다루면서 소라로 회의를 소집하고 발언권을 갖게 하며 봉화를 꺼뜨리지 않고 계속 피워서 집요하게 구조를 기다리는, 민주주의와 합리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랠프와 새끼돼지, 그들의 인간적이지만 유약하고 지금은 비현실적인 예전의어른들의 사회에 의존하고 그들을 닮으려는 이상주의에 반발하여 열심히 봉화를 꺼뜨리지 않고 피워 올려서 구조에 집착하는 대신에 자신들이 처한 현실의 테두리 안에서 본능적으로 적응하여 멧돼지를 사냥해서 육식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무리의 규칙을 위반하면 폭력이라는 부정적인 방법을 써서 공포의 질서를 유지하며 어리석은 중의보다는 독단적인 카리스마와 야만적인 힘과 조직에 의해 무리를 이끄는 잭은 현실세계의 어른들의 양극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랠프를 따랐으나 단결해서 멧돼지를 잡는 희열과 육식을 먹는 재미에 잭에게로 기우는 군중심리를 보이는 아이들은 잭의 폭력과 억압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그를 지지하고 지도자로 옹립한 자신들에 의해 자승자박이 되어 구조라는 꿈을 포기하고 자신들에 의해 강하고 무자비한 폭군이 된 잭에게 복종하여 철저하게 야만인으로 변하는 것이다.
인격을 존중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무리를 지도하는 현명한 지도자를 따르지 않고 폭력과 공포로 질서를 유지하며 본능적이고 야만적으로 무리를 지도하는 폭군형 카리스마에 지배되고 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군중은 여자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 아돌프 히틀러가 생각났고 자신보다 더 강한 힘에 의지하여 비루하게 지배되기를 자처하는, 동물적인 야만성과 본능에 지배되는 저열한 인간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고 선천적으로 악한 존재라는 염세적인 결론을 얻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내재하고 있는 사악하고 야만적인 본성을 자율적으로 통제하고 타율적으로도 통제하여 이타적이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지평을 추구하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