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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phis Photo

루오전

조르주 루오展

20세기 전반 마티스와 피카소의 명성을 뛰어넘는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았던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수파, 입체주의, 표현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고집했다. 루오는 그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화풍을 이루어낸 20세기 현대미술의 대명사이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소장 100여 점의 루오 그림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100여 점의 루오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관객을 위해 엄선된 [견습공], [베로니카], [미제레레]와 같은 대표작과 함께 1970년대 이후로는 퐁피두 센터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미공개작도 소개된다. 이 중에는 [서커스 소녀], [젊은 피에로] 등 역사상 처음으로 관객에게 소개되는 14점과 프랑스 밖에서 처음 공개되는 70여 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엄선된 회화, 판화 등 170여 점의 작품들은 서커스, 미완성작, 미제레레, 후기작의 네 단락으로 구분되어 전시된다. 루오는 종교적 주제를 다룬 그림으로 친숙한 화가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렘브란트 이래 최고의 종교화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루오의 종교적 예술 세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미완성작과 후기 작품을 통해 중후한 마티에르와 강렬한 색채의 하모니 등 종교화의 코드를 뛰어 넘는 현대미술 거장으로서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 소개되는 다수의 미완성작은 루오가 즐겨 사용했던 형태, 색채, 조화의 비밀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놀라운 자유와 감성을 지닌 미완성작은 작가의 내면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전시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루오의 비밀 안으로 들어와 그의 내밀한 세계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졌다. 가벼운 마티에르와 푸르스름한 색채를 통해 서커스를 그린 초기 작품에서부터 색채가 폭발하고 두터운 마티에르가 돋보이는 후기 작품들까지 전시의 네 가지 단계를 따라가면서 루오의 변화하는 화풍이 가진 다채로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화풍의 변화에 따라 4개의 단계로 구성된 전시


전시의 문을 여는 작품은 루오가 1925년에 그린 자화상 [견습공] 이다. 1925년 작으로 50대 중반의 성공한 화가 루오가 10대 후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 견습공으로 일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루오는 14세가 되던 해인 1895년에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 들어가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견습공으로 일했다. 이 시기에 배우고 느낀 것들이 화가로서의 창작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루오의 작품에서 보이는 빛과 색채의 하모니, 검은 윤곽선의 사용, 종교적 주제의 상징적 사용 등은 모두 루오가 스테인드글라스 견습공 시절에 배운 것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이러한 특징적 화풍은 루오의 전 생애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견습공]은 루오 예술의 출발점을 상징한다. [견습공]을 지나면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루오의 예술 세계가 펼쳐진다.

제1장 서커스


서커스는 루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주제다. 서커스라는 소재는 미술사 속에서 오랫동안화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재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도미에, 드가, 툴루즈- 로트렉, 피카소 등 많은 작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광대, 곡예사, 서커스 소녀 등 서커스의 등장 인물들을 다루면서 무한한 연민으로 인물을 감싸안고 그들의 외로움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작가는 루오뿐이다. 서커스 속의 인물들은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웃고 있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하다.힘겹게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바로 이 서커스 곡예사들이다. 그들의 슬픈 표정과는 반대로 이들을 표현하는 루오의 색채는 밝고 강렬하다.

제2장 미완성 작품


루오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후인 1963년 루오의 미망인 마르뜨 루오 여사와 네 자녀는 루오의 아틀리에에서 나온 891점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대부분 종이에 유화, 과슈로 작업한 이 그림들에는 서명이 없으며, 회화적 수준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화가 자신에게는 미완성작으로 남았던 작품들이었다. 루오는 친구 앙드레 쉬아레에게 "나의 성격 중 끔찍한 것은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그려졌다. 루오의 아틀리에에 수백 점의 그림이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은 작가가 늘 더 나은 예술을 추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루오의 ‘미완성작’은 이번 전시에서 크게 ‘장식용 신체’와 ‘풍경’의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소개된다.

제3장 미제레레


총 58점으로 구성된 루오의 판화 연작 [미제레레]의 탄생은 1912년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구체화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크게 상처입은 루오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미제레레 시리즈 판화 제작에 몰두한다. 루오 작품의 실질적인 중추에 해당하는 [미제레레]의 이야기 모델은 ‘십자가의 길’이다. 루오는 이 시리즈를 통해 세속적 세계 안에 존재하고 있는 극도의 고통을 표현한다. ‘십자가의 길’을 모델로 삼은 미제레레의 여정 안에는 그리스도가 존재한다. 루오는 이 지난한 여정 속에 존재하는 인간 고통에 신적인 차원을 부여한다. 즉, [미제레레]는 루오가 본 인간의 ‘수난’인 것이다. 처음에 루오는 이 시리즈를 [미제레레 – 전쟁]이라는 이중적인 제목을 붙이며 시리즈를 두 부분으로 구성했다. 그러다가 1922년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속죄 기도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제목을 하나의 라틴어 단어 ‘미제레레 노비스(Miserere Nobis)’, 즉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로 줄였다.

제4장 후기작


1930년대의 루오는 모두가 인정하는 위대한 화가였다. 그러나 힘든 시기는 루오를 피해가지 않았다. 1917년 루오와 독점 계약을 맺은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것이다.루오는 볼라르가 빌려준 작업실을 빼앗기고, 그 안에 있던 모든 미완성작도 함께 빼앗겨버렸다. 68세 노령의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되찾기 위해 볼라르 상속자들과 끝없는 소송 전쟁을 치른다. 1947년 3월, 루오는 결국 소송에서 이겼고 파리 12구에 있는 에밀 질베르 거리에 정착했다. 루오는 인생의 황혼기에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도 그의 예술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에 싫증내지 않았다. 화면의 색조는 더 밝아지고, 1945~1947년에 들어서서는 점점 더 환해진 색조를 선보인다. 그리고 이 시기에 루오는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두터운 마티에르의 표현주의적 작업을 선보였다. 말년의 루오의 그림은 중후한 마티에르와 강렬한 색채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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