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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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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 3D 영화가 뭔가요?? bbb7349

이젠 3D 영화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최근 2~3년 동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극장 문화는 엄청나게 빠른 변화를 겪었죠. 디지털 상영관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몇 천 원 더 주고서라도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려는 관객들도 상당수이며, 3D를 넘어 4D까지 관객들을 유혹합니다. 어쩌면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열차의 도착](1895)를 상영했을 때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바로 '스펙터클 정신'이죠. 당시의 관객들이 기차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자신에게 돌진하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3D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된 [폴라 익스프레스](2004)의 기차 장면도 비슷한 감흥을 준 것 같습니다. 드림웍스의 CEO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이 영화를 아이맥스 3D로 본 후, 이후 드림웍스가 제작하는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3D로 제작하겠다고 밝혔으니까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왼쪽)과 [폴라 익스프레스]의 기차 장면. 2D와 3D지만, 객석의 관객들은 모두 기차가 스크린을 튀어나와 객석으로 쇄도하고 있
다는 환영에 사로잡혔다.

그렇다면 3D 영화는 도대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 걸 까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그 기본은 인간의 '두 눈'에 있습니다. 우린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받아들여 망막에 맺히는 이미지엔 약간 차이가 있죠. 그 작은 차이를 뇌가 해석해서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일반적인 카메라의 렌즈, 즉 '눈'은 하나입니다. 그 카메라로 만들어진 사진이나 영화는 2D일 수밖에 없는 거고요. 해결책은 간단해 보입니다. 두 개의 렌즈로 하나의 피사체를 찍는 거죠. 다만 3D 영화에서 그렇게 찍은 이미지를 입체감 있는 영상으로 느낄 수 있으려면, 특수 안경이라는 도구가 필요하죠. 그 메커니즘은 '극도로'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하나의 이미지를 A색과 B색 필터를 통해 찍습니다. 그것을 한 스크린에 동시에 겹쳐서 영사하고, 그것을 볼 땐 양쪽에 A색과 B색 렌즈가 있는 안경으로 보는 거죠.

그러면 3D 영화는 반드시 특수안경이 필요한 걸까요? 아닙니다. 오토스테레오스코피(Autostereoscopy) 방식의 3D 영화는 특수안경을 쓰지 않아도 입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스크린에 굴곡을 주거나 고입자 재질을 사용해 빛을 예리한 각도로 반사시킵니다. 1940년대에 러시아에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객석에서 매우 한정된 각도의 자리에서만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술이 일반 관객들과 만난 건 언제부터일까요? 입체영화에 대한 관심은 영화가 발명되던 19세기 말부터 있었지만, '3D 영화의 황금기'는 1952년에 찾아옵니다. '내츄럴 비전'(Natural Vision)이 개발되고, [브와나 데블 Bwana Devil](1952)이라는 영화에서 사자가 화면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장면을 3차원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거죠. 내츄럴 비전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두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다른 색 필터를 끼우고 하나의 피사체를, 약간 덜 겹치게 촬영합니다. 상영할 때는 두 대의 영사기에서 약간 덜 겹치게 상영하고요. 폴라로이드 안경을 쓴 관객들은 복잡한 착시 현상을 통해 입체감을 느끼게 됩니다.

[브와나 데블]이 흥행에 성공하자, 수많은 스튜디오들이 3D 영화에 뛰어듭니다. 1953~54년에 69편의 3D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대단한 붐이었죠. 하지만 황금기는 급격히 막을 내리고 1955년부터는 아무도 3D 영화를 만들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953년에 등장한 와이드스크린이 3D 영화보다 더 놀라운 스펙터클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3D 영화는 사실 퀄리티에 문제가 많았죠. 영화 자체의 입체감도 떨어졌고(극장 사이드에 앉으면 입체감이 못 느낄 정도였습니다), 특수안경도 불량품이 많아 두통을 유발하기 일쑤였습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1950년대에 이미 폐기 처분되었던 3D 영화가 21세기에 갑자기 르네상스를 맞이한 이유인데요, 사실 꾸준한 시도는 있었습니다. 1969년에 3D 소프트코어 포르노인 [스튜어디스]가 흥행하자 X등급 3D 영화가 잠깐 붐을 일으켰고, 1970년대엔 영사기 한 대로 3D 영화를 상영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비디오 시장이 등장하면서 극장 매출이 떨어지자, 3D는 또 한 번 반짝하면서 [13일의 금요일 3](1982) [아미티빌 3D](1983) [죠스 3D](1982) 등이 등장했는데, 열기는 2년 만에 금방 식습니다.

하지만 1985년 밴쿠버 박람회에 아이맥스 3D가 등장하면서 이후 테마 파크에서 실용화되었고, 2003년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시간짜리 해저 3D 다큐멘터리 [심해의 영혼들]를 내놓습니다.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는 최초의 아이맥스 3D 장편 애니메이션이었고, 이후 2D로 촬영된 것을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3D로 변환시키는 방식이 개발되어 [슈퍼맨 리턴즈](2006)와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2007)의 일부 장면이 그렇게 변환되었죠. 그리고 2005년, 월트디즈니에서 리얼D 방식으로 [치킨 리틀]을 선보이면서 흥행에 성공합니다. 3D 록 다큐멘터리인 [한나 몬타나와 마일리 사이러스](2008)는 적은 상영관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고요. 그리고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는 실사 방식으로 제작된 최초의 풀 3D 영화였습니다.

타이타닉의 잔해를 찾아가는 제임스 캐머런의 해저 다큐멘터리 [심해의 영혼들](왼쪽). 초당 72프레임으로 돌아가는 리얼D 시장을 연 [치킨 리틀].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3D 영화는 그 상영 방식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마스터이미지가 개발한 디지털 3D와 할리우드에서 개발된 리얼 D는 하나의 영사기를 통해 상영하는 방식이죠. 그리고 아이맥스 3D는 2개의 영사기를 통해 압도적인 영상을 선사하죠. 그래서 좌석 위치에 따라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앞의 두 방식과 비교하면 확실히 스케일의 차이가 있습니다(관람료가 비싼 이유가 있죠).

3D 영화는 현재 격변기에 있습니다.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3D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죠. 2D 영화보다 고수익이고, 불법 복제를 막을 수 있으며, 해외(특히 중국) 시장 진출에도 장벽이 낮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도 많습니다. 여전히 특수안경을 써야 하고(한때 스필버그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죠), 3D 상영관 확보는 초미의 관심사죠(한국은 79곳의 상영관이 있습니다). 카젠버그처럼 '3D 예찬론자'도 있지만, [아바타](2009)의 제작자인 존 랜도는 "3D 영화를 신화화하는 걸 그만 두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바타]의 힘은, 3D 영화의 본격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지 않을까 예상되네요.


우리나라에서도 3D 영화가 제작되고 있나요? 비공개

현재의 한국은 세계 3D 시장에서, 꽤 무시하지 못할 위치에 있습니다. 몇몇 기업들이 개발한 3D 시스템들이 영화와 방송을 아우르며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니까요. 하드웨어로 본다면 할리우드 못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소프트웨어입니다. 단편 3D 애니메이션인 [트리 로보](2005)가 극찬받긴 했지만, 아직은 '발표' 단계인 것 같습니다. [한반도의 공룡]이 3D로 제작될 예정이고, 최근에 윤제균 감독이 차기작을 3D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작품은 없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1960년대에 한국에 입체영화가 있었다는 사실이죠. [천하장사 임꺽정](1968)과 임권택 감독님의 공포영화 [몽녀](1968)입니다. 여기엔 촬영감독이자 발명가였던 고 장석준 기사의 공이 컸습니다. 그는 1967년에 600여 개의 부품을 직접 조립해 '판스코프'라는 입체영화 카메라를 만들었고, 두 영화를 3D로 촬영했습니다. 당시 할리우드 입체영화는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판스코프'는 한 대의 카메라로 입체효과를 내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죠.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70mm 카메라와 현상기와 녹음기를 개발했고, [춘향전](1971)을 통해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70밀리 영화를 만든 나라가 되기도 했습니다.

[별들의 고향](74) [영자의 전성시대](75) [겨울여자](77) 등의 작품을 촬영했던 그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언은 "오케이? 레디~ 고!"였다고 하네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만 생각했던 사람. 그러한 집요함이 있었기에, 폐품에 가까운 부품들을 모아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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